선우정아를 수식하는 표현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도 장르 변용에 능하다거나, 기존 문법을 인상적으로 뒤튼다는 찬사가 가장 잦게 그의 앞에 붙는다. 이런 갈채에 딴죽을 걸려는 게 아니다. 다만, 어떤 핵심을 놓치는 게 아닌가 싶은 의심을 지울 수 없을 뿐이다. 적어도 2010년대 이후 선우정아만큼 독보적 오라를 두르고 나타난 뮤지션은 (내가 기억하기로) 몇 없었다. 지금 소개하는 3집 <세레나데(Serenade)>에 앞서 2013년 발표한 2집 <잇츠 오케이, 디어(It’s Okay, Dear)>가 먼저 이를 증명한 바 있다.
https://youtu.be/GOS6C2jXTa8
무엇보다 그녀의 재능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할 필요가 있다. 부단한 노력이 뒷받침된 재능이다. 선우정아에 따르면 재즈 클럽에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라이브 무대에 섰다고 한다. 잡지 <어피스오브(Apieceof)>와 한 인터뷰를 인용해본다.“졸업 후에 ‘원스 인 어 블루 문’에서 3년간 노래했어요. 일주일에 두 번씩. 근데 이게 말도 안 되는 거거든요. 하루에 부른 곡의 양과 그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익힌 스탠더드 재즈의 수와 스캣 훈련 횟수와‧‧‧ 그 모든 시간이 지금의 노래를 있게 한 것 같아요.”재능에 대해 논해볼까. 재능은 여러 가지 정의가 있겠지만 아마도 ‘뭐가 좋은지 꿰뚫어보고 그걸 그냥 빨아들이는 능력’ 비슷한 것일 테다. 한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뭐, 운 좋으면 3년 정도는 순항할 수 있겠지. 어쨌든 이 세상에는 대단한 재능을 타고났지만 그걸 체계화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한 나머지 그 재능을 산산이 흩뿌린 채 끝나버리는 사람들 천지다. 선우정아는 그러지 않았다. 3년에 걸친 단련의 시간이 성장의 밑거름이 되어줄 거라고 믿었다.
https://youtu.be/KEPtYVq9jbM
그렇다. 노력할 줄 아는 것도 재능이며, 반복에 헌신할 줄 아는 것도 재능이다. 천부(天賦)에 만족하지 않고, 선우정아는 음악에 대한 감각을 꾸준히 갈고닦았다. 날카롭게 벼렸다. 나는 때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허황된 이상이 아니라 구체적 행동 규범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태도에 기반한 정수가 3집 <세레나데>에 빼곡히 담겨 있다.기실 <세레나데>는 이전 두 EP인 <스탠드(Stand)>와 <스터닝(Stunning)>에 새로운 EP를 합친 결과물이다. 이른바 ‘S 트릴로지’의 완결 편인 셈이다. 단언컨대 이 트릴로지가 막 완결된 스타워즈의 그것보다 백배는 더 훌륭하다. 아니, 비교 불가다. 이유는 간단하다. 3부작의 다채로운 면모를 하나의 줄기로 통합하는 선우정아의 압도적 존재감 덕분이다. 진심을 다해 사랑과 이별을 처절하게 노래(‘도망가자’, ‘생애’)할 때도, 기분 좋은 거만함으로 클래식(‘Classic’)의 멋을 과시하듯 전시할 때도 거기에는 모두 선우정아만의 강렬한 인장이 찍혀 있다.
https://youtu.be/xF3QiF7PiJc
참으로 신묘한 뮤지션이다. 한껏 우울하다가도 낄낄대면서 낙천을 드러내고, 예술가로서의 자존을 콧대 높게 세우다가도 바닥에 처박힌 채 갈팡질팡한다. 예를 들어 ‘멀티플레이어(Multi Player)’에서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냉소는 어떤가. ‘쌤쌤(Sam Sam)’에서 선우정아는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라고 노래하는데, 이게 도리어 위안이 되는 순간이 분명히 있다. 과연 그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계열과는 급부터가 다른 예술가다.‘슈퍼히어로(Super Hero)’와 ‘레디(Ready)’가 이어지는 구간은 그중에서도 의미심장하다. 서로에게 힘이 되는 사랑인가 싶었는데, 어느새 이별이 성큼 찾아와 있다. 여기가 바로 지옥이다. 중요한 건 (‘배신이 기다리고 있다’가 보여주듯) 지옥의 한 시절을 통과하는 와중에도 선우정아는 품격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뭐로 보나 2010년대가 배출한 걸작 중 하나다. 장르를 종횡무진하고, 주제를 탐사하는 와중에도 자기 개성이 이렇듯 매력적으로 구현된 앨범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그는 마치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 필수적으로 통과해야 하는 기관 같다. 조금 과장해서 결론을 내볼까. 선우정아라는 수원지에 푹 담갔다가 건져내면 그 무엇이든 음악이 된다. 다름 아닌 이 음반 <세레나데>가 이를 증명한다. [ 발취 : 배순탁음악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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